제17화
- 이산
- 소중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우리 곁을 떠나가.
- 그래도 우리에겐 서로가 있으니 견딜 수 있어, 그렇지?
- 내가 잘못했다.
- 네가 여전히 궁녀였다면…후궁이 되라 강요되지 않았더라면…
-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 전하, 정녕 신첩을 아끼셨사옵니까?
- 그럼 부디 다음 생에서는 신첩을 보시더라도 모르는 척 옷깃만 스치고 지나가 주시옵소서.
- 전하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 미워하는 것도 아니옵니다.
- 그저 다음 생에는 신첩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것이옵니다… ——성덕임
- 너는 나를…조금도 연모하지 않았느냐?
- 아주 작은 마음이라도 내게는 주지 않았어?
- 아직도 모르시옵니까?
- 정녕 내키지 않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멀리 달아났을 것입니다.
- 결국 전하의 곁에 남기로 한 것이 제 선택이었음을 모르시옵니까. ——성덕임
- 덕임아, 나는 더는 너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 그저 잊은 척에 불과하더라도 상관없다.
- 너를 잊을 것이다.
- 임금이다.
-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 의무를 다할 것이다.
- 평생 그리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리 살아갈 것이다.
- 나는…너를 잊을 것이다.
- 이것이 과거라 해도 좋다.
- 꿈이라 해도 좋아.
- 죽음이어도 상관없어.
- 오직…너와 함께하는 이 순간을 택할 것이다.
- 그리고 바랄 것이다.
- 이 순간이 변하지 않기를…
-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 그리하여 순간은 곧 영원이 되었다. ——성덕임
- 성덕임
- 신첩은 원한 적 없사옵니다.
- 정1품 빈이 되기를 원한 적 없사옵니다.
- 원치도 않는 것을 얻었다 하여 무조건 참고 인내해야 하옵니까?
- 제 배로 낳은 아이가 죽었는데 마음대로 슬퍼할 수조차 없습니까?
- 전하께서도 아파하시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았지요.
- 그런데도 제가 전하께 모질게 굴었습니다.
- 임금이시니 괜찮을 거라 여겼지요.
- 임금이라도 괜찮지 얺으셨겠지요?
- 임금이시기에 더 괜찮지 않으셨겠지요?
- 난…괜찮다.
- 견딜 수 있어…
- 견디여야만 하고. ——이산
- 전하, 봄이 되면 다시 꽃이 피겠지요?
- 별당의 꽃나무를 말하는 것이냐.
- 그 나무는… ——이산
- 다시 필 것이옵니다, 언젠가…반드시.
- 그때가 되면 모든 게 다시 괜찮아지겠지요.
- 전하와 함께 꽃을 구경하고 싶습니다.
- 전하께서 아직 동궁이시고 제가 궁녀였던 시절처럼.
- 모든 게 다 괜찮았다, 그 여름 날처럼.
- 중전 김씨
- 이 구중궁궐에 갇혀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 누가 우리를 이곳에 가두었을까요?
- 9개의 담장을 둘러 가두고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막았을까요?
- 궁궐은 참으로 하려한…감옥이지요.
- 서 상궁
- 전하께서 의빈 자가를 참 아끼셨지 않습니까.
- 유일하게 본인의 의지로 스스로 선택하신 분이 의빈 자가셨지요.
- 참 우습게도 세상 모두가 알아버린 겁니다…전하께서 누구를 가장 사랑하셨는지.
- 손영희
- 모두가 슬플 걸 알면서도 전 그저 제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었어요.
- 궁녀로서 감히 꿈꿀 수 없는 행복을 맛보았어요.
- 그 대가가 죽음일지라도 전 상관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