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정보

주연
김유정, 안효섭, 공명, 곽시양
장르
사극, 로맨스, 판타지
시청 등급
15세
연출
장태유
극본
하은
촬영 장소
한국
제작사
스튜디오 S, 스튜디오 태유
방송 국가
한국
방송 언어
한국어
방송 채널
SBS
방송 시간
월/화요일 밤 10:00
방송 기간
2021년8월30일 – 2021년10월26일
방송 분량
70분
방송 횟수
16부작

줄거리

마왕의 저주로 눈이 먼 채 태어났으나 신의 축복으로 눈을 뜬 여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건 그림을 그리는 여 화공 홍천기.

나라를 위해 기우제의 제물로서 죽어야 했던 순간, 몸속에 스며든 마왕의 힘으로 살아난 사내.

눈을 잃고 아버지를 잃은 채 평생을 살아가게 된 하람.

때로는 악연(惡緣)과 인연(因緣)의 사이에서, 때로는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서, 운명의 보이지 않는 붉은 실에 의해 다시 만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는…

두 연인의 운명적이고도 극적인 판타지 로맨스가 시작된다.[1]

명대사

    제1장 붉은 하늘
    홍천기
    이렇게 눈을 감으면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소리를 듣다 보면 그림이 떠오르고, 그림이 떠오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는 소리로 세상을 보니까.
    하람
    난 잘 모르지만 그거 어쩔 수 없는 거야.
    너에게 벌어진 일이 다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네 잘못이 아니란 말이다.
    허니, 어쩔 수 없는 일로 너를 탓하지 말아라.
    이후
    율아, 넌 아무렇지 않느냐?
    우리는 불두화 같은 존재다.
    꽃은 피우지만 살아 있어도 열매는 맺을 수 없는, 생명이 없는 꽃이란 말이다.
    나는 세자 저하를 만날 때마다 이 같은 기분을 느낀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말이다.
    형님, 불두화는 처음 꽃이 필 때에는 연초록색이나 활짝 피면 흰색이 되고, 질 무렵이면 노란빛이 됩니다.
    한데, 이토록 화려하게 살아있는 것을 어찌 생명이 없다 하십니까? ——이율
    제2장 신령한 화공
    홍천기
    이제 아버지가 “내 딸 홍천기”하면서 다시 예전처럼 제 붓을 같이 잡아 주면 좋겠어요.
    “모작 같은 것 다시는 그리지 말라” 혼도 내주고, 진심이 아닌 그림이 그리는 게 무슨 소용 있냐고 야단도 쳐 주고.
    혹 운종가의 월성당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거기가 곡가의 그림을 파는 곳으로 유명한 화방인데 실은 뒤에서 가짜 모작을 진품인 것처럼 파는, 아주 파렴치하고 썩어 빠진 놈들입니다.
    그놈이 저에게 사기를 쳐서 제 돈을 가로챘고 제가 그 빚을 확실하게 갚아 주었죠.
    분명 관아에 끌고 간 것까지 봤는데 이렇게 빨리 풀려날 줄은…
    아~ 맞다! 일월성! 그자가 손을 썼나 봅니다.
    그자가 제일 나쁘고 아주 위험한 자입니다, 그자의 정체를 알게 된 사람은 목숨줄이 큿~!
    하람
    전하, 비록 그날의 일에 망실했다도 허나, 어찌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겠아옵니까?
    아버지를 죽게 하고 우리 가문을, 제 삶을 망가뜨린 자들이 죄값을 치르게 전까지는…
    절대로 잊을 수도…멈출 수도 없아옵니다.
    최원호
    춘복이 자네 그거 아나?
    천기가 지 애비 챙긴 지가 벌써…
    20년이지요? 예,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말씀 안하셔도… ——강춘복
    한 치 앞을 못 보던 요만한 애가…비가 내리는 날에 눈을 뜨고 나타났어…
    아버지를 먹여 살려 한다면서 장작을 베든, 설거지를 하든…밥값을 할테니, 그림을 가르쳐 달라는데…
    분명 하늘이 그 효심을 감복해서 눈을 뜨게 해준 게야!
    게다가, 허은오의 핏줄이 아니랄까 봐 그림을 또 어찌나 빨리 배운 것도 얼마나 기가 막히게 잘 그리는지…
    마음을 안 쓸 수가 없었…지.
    최정
    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
    마감 기일까지 그림을 완성하는 것 아닌가? 때를 놓지면 아무도 안 살테니 말이야. ——홍천기
    제3장 마왕 魔王
    홍천기
    그래! 그거! 내가 그래서 의원을 부르라고 화단에 내려온 거라고!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서둘러 인왕산 안료 집으로 가야 된다니까?
    그렇게 마음에 드는 것이냐? 그 선비가? ——견주댁
    아니 뭔 소리야? 내 은인이라니까!
    그래? 알았다, 알았어. 그렇다면 내 도와줘야지! ——견주댁
    참말이지? 도와줄 거지?
    그래, 참말이다! 근데, 총각은 확실한 거지? ——견주댁
    뭔 소리야? 참말로?
    하람
    실례가 안된다면, 낭자의 이름을 좀 알고 싶소만…
    이름이요?…홍…홍…홍… ——홍천기
    홍홍홍? 정녕 이름이 홍홍홍이요?
    정쇤내 (월성당 부당주)
    뻔한 운종가에서 백유화단 홍천기 하나 잡으면 돼 뭐 이렇게 시간을 끌어?!
    내 그년 때문에 포청에 끌려갔고 월성당 문까지 닫았어! 당장 나가서 잡아! 뭐해?!
    스승님, 그 저잣거리에 광증에 걸린 아비가 늘 나와 있다고 합니다. 그 아비라도 좀 잡아 올까요?
    야, 야! 그자 손목까지 분질러야지, 미친놈 하나 잡으면 어따시게!
    넌 내가 여기 처음 들어올 때 뭐라 그랬어?!
    네가 아무리 왈패라도 선을 지키라고 했어 안했어!
    잘 들어! 우리는! 노인과 아이는 건들리지 않는다…알았어?!
    제4장 운명의 붉은 실
    홍천기
    선비님, 오늘 하루는 잘 지내셨습니까?
    몸은 많이 회복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혹 그날차럼 우리가 또 다시 우연히 만난다면…그때는 정녕 선비님의 얼굴을 그려 보고 싶습니다.
    그깟 화공 명부요?
    진정 대군으로 살아왔기에 대군으로 말하는 법밖에 모르신다더니 그 말씀이 맞네요.
    지체 높으신 대군나으리께는 그깟 화공 명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데 적어도 이건 제 동기들의 인생과 백유화단의 명예, 그리고 제 삶의 희망이 적혀 있는 명부입니다.
    이번에도 정녕 화회는 안 보내실 작정이십니까? 남녀가 유별하고 강상의 법도가 지엄하니, 화회 나갈 시간 있으면 넌 시킨 일이나 똑바로 해라, 이거잖아요.
    단주님, 제가 화회에 나가면 백유화단 명예가 더럽혀지기라도 할까 봐 이러시는 거예요?
    하람
    이게 무슨 짓인가!
    당장 그 손을 놓아라.
    이 여인은 내가 데려가지.
    이율 (양명대군)
    나는 수려한 용모, 시・서・화에 능해, 삼절이라 불리는 이 나라의 대군…양명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아니 내 정녕, 내 마음만큼은 예를 다하고 싶었어. 당신이 양명대군이면…나는! 양명대군의 부부인이올시다! ——홍천기
    하하하! 네가 참 당돌하구나. 내 비록 지금 냄새나는 옷을 입고 있다고는 허나…
    당돌? 당돌…좋습니다. 선비님이 대군나으리시라고 칩시다. 한데, 저같은 아랫것들은 대군이 들어와도 집을 지킬 자격조차 없단 말입니까? 대채 그런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뭐 양명대군이란 이름이 통행증이라도 됩니까?! ——홍천기
    그 살아생전 이런 일을 두 번 겪었다면 모르겠다만…그 참으로 곤란한 말이로구나. 내 여태껏 대군으로 태어나, 대군으로 살아왔기에, 내 대군으로 말을 하는 법밖에 모르니 어쩌겠느냐.
    누가 들으면 진짜 대군나으리께서 말씀하시는 줄 알겠습니다. ——홍천기
    왕친을 능멸한 죄는 죽어 마땅하다. 허나 그만하면 되었다, 나도 네가 화공인 줄 미처 몰랐으니.
    내 그깟 화공 명부라는 말은 취소하지.
    게다가 내 너를 죽이면 난 홀아비가 되는 것이 아니냐?
    네가 내 부부인이라면서.
    왕 (성조)
    너도 알고 있겠지? 아바마마도 나도…적장자가 아니였다.
    그래서 가뭄과 기근이 있을 때마다 하늘은 왕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백성들은 모두 나를 비난했다.
    적장자가 보위에 오르지 않았을 때 백성들의 반감을…넌 모른다.
    제5장 매죽헌 화회 上
    홍천기
    아버지, 누가 일획 속에 만획을 담을 수 있을까요? 욕심을 내려놓으니 꽃이 보이고 달이 보입니다.
    그렇군요. 매죽헌에서 그림경연은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대군 나으리께선 매죽헌화회는 신분과 계급을 떼고 오직 실력으로만 겨루는 경연이라 하셨습니다. 헌데, 그것은 다 듣기 좋은 말뿐이고 결국 대군 나의리의 취향과 생각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정말 너니? 네가 맞니?
    묻고 싶은 말이 많지만 아껴둘게.
    아작도 네가 그곳을 기억하는지 알고 싶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손을 잡아주던 너의 따스함을 나는 잊지 못한다.
    듣고 싶다, 네가 돌아올 수 없었던 이유를.
    하람
    그녀가 맞다고 해도 어차피 한번 끊어진 인연이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큰일 을 그르칠 수는 없다.
    19년 전 복사꽃밭.
    마음에 품었었다 한들 이미 나는 죽은 사람이다.
    혹 기다렸느냐, 내가 약조했던 내일을.
    이율 (양명대군)
    그대의 그림은 어떤 매화도와도 다른 특아한 구도였다. 이 하나만으로도 보는 이를 미혹하니, 재주는 충분히 갖추었다.
    허나 이 그림 속 매화는 꽃받침이 모두 위를 향하고 있어 살구꽃처럼 느껴지고, 달밤의 나비들이 이리 흐드러지게 날고 있는 풍경은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에 바쁜 그 화공의 얄팍한 속내가 드러낸 것이 아니냐.
    이는 지조와 절개를 뜻하는 매화의 향기를 판 것이나 진배없다.
    10번을 물어도 그대의 그림은 나에게 불통이다.
    제6장 매죽헌 화회 下
    홍천기
    대군 나으리, 그저 먹고살기 위해 재주로 돈을 벌었을 뿐입니다. 헌데 그것이 그리 잘못한 것입니까?
    네 정녕 재주가 아깝구나. ——이율 (양명대군)
    대체 저에 대해 뭘 안다고 이러십니까? 전 그저…병세가 깊어져 위독하신 아버지 약을 구하고자 이 화회에 참석했을 뿐입니다. 이번 만큼은 평생 저희 부녀에게 온정을 베풀어주신 단주님과 그리고 백유화단 식구들, 제 친구들에게 또다시 손을 벌려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해서 어떻게든 저 환자 해 보려고 이 화회에 참석한 것인데 단주님께선 이 경연을 포기하라 하십니다. 대군 나으리는 제가 부끄럽다 하셨고요.
    전 어찌 해야 합니까? 선비님이라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선비님이 그 소년이 아니라면 어찌 그리 쉽게 잊으라 하십니까?
    그래야 낭자가 편안해질 테니까요. ——하람
    하람아, 잊어달라 하였지?
    허나 나는 너를…잊을 수 없다. 한 번 그어진 획은 지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람
    지나간 인연은 잊으셔야 하오. 그 소년이 분명 다음 날 찬아온다 약조했다 하지 않으셨소. 헌데 오지 않는 그 소년을 낭자가 찾아서 소년이 기뻐할까요?
    그 소년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면…잠시 약조를 잊어서 오지 못한 것이라면…다음 날, 그 리고 또 다음 날, 다시 찾아가는 것이 문제가 되었겠습니까?
    소년이 낭자를 찾아오지 않은 것은 낭자를 잊었기 때문이오.
    그러니 잊으셔야 하오.
    그러니 가만히 계셔야 하오.
    그래야…다치지 않습니다.
    간직하고 싶었던 단 하나의 기억…지키고 싶었던 약속을 이렇게 보낸다.
    이율 (양명대군)
    박이의 소춘도를 모작한 게 네가 맞느냐?
    소춘도 속 그 나비, 그리고 네 월매도 속의 그 나비. 분명 같은 화공의 그림이었다.
    잘 그린다고 모두 같은 나비를 그리는 것은 아니지. 연나라 고화들을 그대로 답습하여 필치는 능란하고 묵법도 절묘하나 너의 그림에 너의 필과 묵의 기운은 묻어 있긴 한 것이냐? 춘법과 묵법만 놓고 볼 때 이것이 박이의 소춘도인지 너의 그림인지…구분이 가겠느냐?
    춘법 따윈 몰라도 속기를 버려야 그림에 신기가 있는 법. 사람들은 화공의 재주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다. 화지에 피어난 화공의 진심에 감동하는 것이다.
    너만의 추억을 담았다고는 하나 너만의 묵빛을 찾지 못한다면 그동안 답습한 화려한 기교와 번뜩이는 재치로 통과한 그림은 재차까지다. 네가 장원을 한다 해도 언제가 모작공임이 밝혀진다면 이 매죽헌 화회 경연에 씻을 수 없는 오점외 될 것이니. 3차에서는 너 자신을 믿고 붓을 들기 바란다.
    무릇 대상의 기운이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속에서 포착해야 하는 법. 육법에 오묘한 경지를 통달해내었음은 물론이고 그림의 기가 바람을 만마면 흩어졌다가 물을 만나면 멈추는 이 신묘한 자연의 이치까지 담아내었으니, 이는 능히 신품이라 일컬어질 만하다.
    이후 (주향대군)
    내 한 가지만 물으마. 선왕이신 영종 할바마마께오서 역적이었더냐? 역적이냐 아니냐? 대답해 보거라.
    아닙니다. ——이율(양명대군)
    할바마마께오서 거사에 성공하시기 전엔 역적이었느냐?
    아닙니다. ——이율(양명대군)
    그렇다면 네가 보기엔 나는 억적이냐?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활은 이미 당겨졌고 화살은 시위를 벗어났다. 그 첫 번째 화살이…누구를 향해 날아가겠느냐?
    그 화살의 첫 번째 과녁이 제가 된다 해도…저는 물러서지 않을 것이옵니다. ——이율(양명대군)
    제7장 재회
    홍천기
    단주님, 아직도 우리 견주댁 손 못 잡았어?
    너무하신다. 아니, 거의 20년째 아니에요? 우리 견주댁 같은 사람 어디 가서 쉽게 못 만나요.
    후회하시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은 용기 내서 하세요.
    잊기 않겠습니다. 맹아가 무슨 그림이냐며 모두가 비웃을 때 단주님은 그러지 않으셨던 것도, 제가 눈 떴을 때 기뻐하셨던 것도, 누구보다 많은 먹과 화지를 썼음에도 아무 말 않으셨던 것도.
    제가 그런 단주님이 계신 백유화단에 몸담고 있다는 것도 절대, 잘대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아는 소년이 컸다면 딱 선비님 같은 모습이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제 착각이었습니다. 그 소년이 자신을 알아보길 원치 않으니까요. 해서 사정은 모르지만 지켜줄 것입니다.
    그 아이가 자신을 알아보길 원치 않는다면 죽었거나, 죽은 듯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겠죠. 해서 모른 척 지내기로 하였다 이 말입니다.
    허나, 전 지금의 이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할 겁니다. 지금의 고마움, 지금의 반가움, 이 고민들을요. 그럼 아주 조금은 지금이 더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살아가면서 또다시 약조를 지킬 수 없을 만큼 힘든 날이 오면, 그때 선비님을 믿고 기다렸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하람
    주제 넘은 일인 줄은 알지만 쌀 300석이 참으로 아깝습니다.
    제주가 용해 너의 그림을 300석이라는 큼값에 샀거늘 이리 분수도 모르다니. 양명대군 나의리, 전 이런 미천한 아비를 가진 화공에게 차마 쌀 300석을 줄 수는 없사옵니다. 허나 이미 제 손을 떠나간 재물을 다시 가져올 수 없는 일.
    주향대군 나으리, 제가 눈이 멀어 좋은 화공과 어리석고 미천한 화공을 구분치 못하여 졸지에 주향대군 나의리의 심기를 어지럽히게 되었으니, 쌀 300석을 사죄의 의미로 드리고자 하옵니다. 그리 해도 되겠습니까?
    저는 홍 화공이 매죽헌의 명단을 가지고 왔을 때 대군 나으리와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아 보여 여쭤볼까 했는데…
    어허! 그, 그게 무슨 소리, 아직 그런 사이는 아닐세. ——이율 (양명대군)
    아직…이라니요?
    아니!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향은 아무리 잘 감싼다고 해도 향기는 천리를 가는 것 아니겠는가? 내 그녀에게 화공으로서 흥미가 생겨서 말일세. 이만 가세. ——이율 (양명대군)
    송구하옵니다, 대군. 저와의 약조가 먼저였습니다.
    이율 (양명대군)
    하 주부. 형님께서 몇 번이나 말씀하지 않으셨나, 나서지 말라고. 허나 곤경에 처한 하 주부의 마음이 나 역시 걸리는구나. 형님, 하해와 같은 넓은 아량으로 하 주부의 마음을 받아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니 너는 정녕 겸손이라고는 없는 것이냐?
    그게 뭡니까? 먹는 겁니까? 저는 그런 거 잘 모릅니다. ——홍천기
    아파서다. 너만 보면 내 마음이 아파서.
    이후 (주향대군)
    아비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아비를 대신하는 것 또한 자식의 도리겠지?
    아비가 비쳤기에 손을 잘못 눌린 것이라면 자식이 직접 죗값을 치르면 될 터, 아니 그러하냐?
    하해 같은 나의 마직막의 아량이다. 대답하라, 아비를 대신해 벌을 받겠느냐?
    양명대군은 대군으로서 위엄을 가추거라!
    지금 네가 나서서 나와 다툼을 시작한다면 그건 이 화공 때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나서겠다면 나의 노여움은 더욱 깊어질 것이고, 실수였기에 목숨만은 부지할 수 있었을지 모를 이 화공의 아비가 죽을 수도 있다.
    제8장 불에 탄 왕의 초상
    홍천기
    가끔 오늘처럼 네 마음을 솔직하게 나한테 말해 줘. 난 그거면 된다.
    저도 그날 대군나으리와 그렇게 헤어진 게 마음이 편치가 않아서 나으리께 드릴 것을 준비했습니다. 세상에 거저는 없으니까요.
    되었다. 네가 가진 뭐 있다고. ——이율 (양명대군)
    아니, 제가 정성 껏 준비했다는데 무엇인지 들어보시지 않으시고, 지금 무시하시는 겁니까?
    가난은 죄가 아니니 부끄러워 말거라. 난 괜찮다. ——이율 (양명대군)
    후회 없으시지요?
    난 그렇게 계선적인 사내가 아니니라. ——이율 (양명대군)
    대군 나으리만을 위한 그림을 그렸아온데 넣어두지요, 뭐. 무르시기 없습니다.
    그림? 이 청심원 값이 그림이었단 말이냐? ——이율 (양명대군)
    가난은 죄가 아니니, 팔아서 아버지 약값으로 써야겠습니다.
    어허! 어찌 화공이 이렇게 융통성이 없는 것이냐?! 어디 나를 위해 그렸다고 하니, 내 그림이나 좀 보고 가야겠다. ——이율 (양명대군)
    하람
    그리웠어, 아주 많이. 헌데 난, 널 지금, 내 곁에 둘 수가 없어. 너의 곁에 있으면 난 오래전 하람이고 싶어지니까. 복숭아를 따러 가자고 약조했던…그 옛날의 나로…돌아가고 싶어지니까.
    이제 난, 더 이상 그렇게 살 수가 없다. 그러니 넌…날 모른 척, 이대로 살아가다오. 부탁이다.
    기다려다오. 언젠가 널 찾아갈 수 있을 때까지.
    진심이냐 물으셨습니까? 그것은 왕실의 위엄을 지키고 대군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셔야 할 대군께서 제게 하실 질문은 아닌듯 하옵니다.
    그날 감환에 걸리진 않은 것인지 궁금해서요.
    헌데 왜 손목을… ——홍천기
    제가 맥을 좀 짚습니다.
    원래 맥이 이리 빠르오? 어디가 안 좋은 뜻 싶소.
    북두칠성이 어떤 별인지 아시오?
    글쎄요, 어떤 별입니까? ——홍천기
    인간이 삼신할매에게 명줄을 받아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삶의 길흉화복을 모두 주관하는 별이라오.
    허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입니까? ——홍천기
    적어도 내가 사는 세상에선 그렇소.
    그럼 사람들이 애쓰며 사는 것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홍천기
    주어진 운명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이율 (양명대군)
    약조? 홍 화공을 이 빗속에 걷게 한 이가 하 주부였나?
    그것이 아니오라… ——홍천기
    대답하거라, 하 주부였나?
    낭자가 빗속을 걷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하람
    몰랐다? 사람을 이 빗속에 걷게 하고 몰랐다라. 허, 이리 난감할 때가 있나. 나중에 보세. 가자.
    대군 나으리, 선비님께선 앞도 보이지 않으신 분이라… ——홍천기
    (이는 나는 안 보이는 것이냐?)
    그날, 빗속에서 하 주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네 정녕 모르겠느냐? 내게 솔긱할 수 없는 연유가 혹 하 주부 때문이냐?
    넌 안색을 숨기는 데 참으로 서툴구나. 이만 가보겠다.
    진심이냐?
    진심입니다. ——하람
    헌데 왜 나는 그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걸까. 진심은 입으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 주부의 말이 사실이라면, 진심이라면, 그렇다면, 다시는 절대로 홍 화공을 빗속에 걷게 하지 마라.
    내가 전에 할바마마의 어용을 본 적이 있다 말하지 않았느냐. 할바마마의 수염털오라기 개수까지도 내가 다 설명할 것이니 마음 놓거라.
    진정 그것을 다 기억하십니까? ——홍천기
    뭐, 내가 틀리게 말을 해도 알아서 잘 그리겠지? 그대는 홍 화공이 아닌가?
    제9장 불멸의 관상
    홍천기
    선비님은 그저 앞이 안 보이는 아픈 사람일 뿐입니다. 부디 다시 한 번만 생각해 주십시오.
    아무 기억도 나지 않으십니까? 그러니까 그 눈이 막 돌아가고…
    눈이 돌아가다니요? ——하람
    아니 아니요. 그 돌아간 게 아니라, 그 눈이 막 검붉게 변하고 그 선비님의 손톱이 막 길어지고.
    손톱이 길어지다니 무슨? ——하람
    그 손으로 막 목을 조르고 힘도 물괴처럼 막 세져가지고.
    꿈을 꾸셨던 것이오? ——하람
    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무 기억도 없는 분에게.
    자세히 말해보시오. ——하람
    아닙니다. 계속 말하면 저만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요.
    액막이연은 원래 끊어서 같이 액을 날리는 겁니다. 제 것도 같이 끊어서 날릴게요. 두 연이 함께 날아가고 있어요.
    모든 액을 담고 날아가나 봅니다. ——하람
    하람
    받아주시오. 생전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주셨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옥가락지요. 손수건보다 더 오랫동안 간직해 주셨으면 하오.
    이리 소중한 것을 왜…제가 이걸 간직해도 되는지. ——홍천기
    그대를…그대를 연모하오.
    낭자에게 어린 시절 그 소년은 어떤 기억이었습니까?
    그땐 눈이 보이지 않아서 코찔찔이 같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홍천기
    막상 눈을 뜨고 보니 다르오?
    예, 아주 훤칠한 선남 같습니다. ——홍천기
    허면 그 소년이 잘생겨서 좋은 것이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누가 압니까? 그때 코찔찔이었는지. ——홍천기
    이율 (양명대군)
    이 나라 왕실의 운명이 너에게 달렸다. 내 반듯이 해낼 것이야. 그대와 함께 말이다.
    이후 (주향대군)
    선왕께서 말씀하신 게, 세상은 항상 위태롭고 어좌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아직도 전 왕조의 잔당들은 호시탐탐 지방에서 할거를 노리고, 법궁은 충신인지 간신인지 알 수 없는 자들이 활보하고 있지.
    그러하니 내가 왕이 되어야겠다.
    제10장 어용화사
    홍천기
    아, 어떡하지?
    누가 보면 오해할 만한 상황이겠죠? ——하람
    아닐 거 같으십니까?
    그러니까 이게, 아~ 저기! 모른 척 안 하셔도 됩니다. 아는 척 하십시오. 아, 이게 그런 게 아니라,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오! 저히가 날이 너무 좋아가지고 산보하러 나왔다가 날이 너무 더워가지고…
    낭자, 난 괜찮소. ——하람
    네? 뭐가 괜찮아요, 이꼴을 하고? 다시 돌려주십시오. 좀 잘 봐주십시오.
    하람
    낭자? 아니 대체 내 방엔 왜?
    또 기억이 안 나십니까? ——홍천기
    무슨 기억 말이오? 잠깐만, 그것보다 내 방엔 대체 왜 왔소?
    여긴 제가 있던 방입니다. ——홍천기
    아니 내가 대체 여기 왜?
    참말로 기억이 안 나시는 거죠? ——홍천기
    내 여기 어떻게 왰소?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간밤에, 간밤에 갑자기 방에 들어오셔서…그냥 주무셨습니다. 저 진짜 깜짝 놀랐다구요. ——홍천기
    정말이요? 내 또 낭자에게 몹쓸 짓을 저지르고 기억을 못하는 게 아니오?
    몹쓸 짓이라곤 이방에 들어온 거. 그것 뿐입니다. ——홍천기
    속옷…잠, 잠깐만! 이쪽으로 보지 마시오!
    오아아! 제 쪽도 보지 마십시오! ——홍천기
    아니 난 어차피 눈이 보이지가 않소…
    돌아 앉으십시오! ——홍천기
    예…낭, 낭자.
    돌아보지 마시라고요! ——홍천기
    거 아무 일도 없었다. 불편하게 하지 마라.
    예, 오해 안 했습니다. 아,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거지요? ——만수
    역시 만수 넌, 말이 잘 통하는구나.
    비녀는 어떤 게 좋겠습니까? ——무영
    거 그런 거 아니라니까!
    예예, 아닌 것 다 안다니까요…근데, 지금 나가면 비녀를 구할 수 있으려나? ——만수
    소리들 말로는 저자의 연정이란 패물 가게엔 없는 게 없다 들었소… ——무영
    거 오해라지 않았느냐?! 오해!
    우린 함께할 수 없는…인연인 거 같소. 떠나시오, 나에게서 멀리. 부탁이오.
    이율 (양명대군)
    나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문제가 안 생긴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허나 내 너를 목숨처럼 중히 아끼고 지킬 것이다.
    헌데 제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제 아버지는? ——홍천기
    약조하마. 너와 함께 너의 아비도 내가 꼭 지킬 것이다.
    어찌 그런 말씀을… ——홍천기
    내가 지키지 못할까 봐 걱정되느냐?
    그런 것이 아니오라, 대군 나으리께서 왜 저와 제 아버지를 책임지십니까? ——홍천기
    너를…연모하니까.
    피하지 않겠다. 그 어떤 고난이 다가온다 해도 내 피하지 않을 것이다. 운명은 정해진 것이라 했느냐? 내 그것을 뛰어넘을 것이다. 내가 지킬 것이야! 홍 화공도, 이 나라도.
    다시는 홍 화공을 만나지 마라, 어용이 완성될 때까지.
    마왕을 담고 있는 자와 마왕을 봉인하는 자가 만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필경 누군가 물고가 날 것이다.
    자네가 다시 만나다가 내 눈에 띄는 날에, 그땐 내 너를 정녕 용서치 않을 것이다.
    왜 이렇게 거짓말을 열심히 하는 게냐. 난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가졌다. 그것이 그림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기다릴 것이다. 오지 않으면 찾아 나설 것이고.
    제11장 운명의 가락지
    홍천기
    기억하십니까? 저와 처음 궐에서 만났던 날도 앞이 보이지 않아 넘어진 저를 일으켜 세워지시면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미안하다.’
    왜 대군께서 미안해하십니까? 제가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을, 저에게 죄가 있는 것을, 왜 대군께서…미안해 하십니까?
    아버지, 아버지 나 있잖아. 처음으로 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림을 그려야 할 거 같아.
    한 번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번만…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릴게.
    아버지가 그렸던 그림, 내가 다시 완성할 거야.
    대군나으리, 화공의 붓은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물며 신령함이 깃들어야 하는 영종어용은 어떠하겠습니까?
    제 마음에 한 점의 여한이라도 없애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제발, 제발 한 번만이라도…선비님을 뵙게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도 한때 그러셨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면 너만 어렵게 만들 쁜이니 자신을 버리고 떠나라구요. 이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일이니까 당신을 위해서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헌데 그것이 말이 됩니까? 아버지는 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인걸요. 그러니 선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셔도 소용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선비님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우린…어렵게 다시 만났으니까요.
    하람
    복사꽃 향기는 봄마다 찾아오지만, 그곳에 있던 소녀는 다시 볼 수 없네.
    눈을 잃고 온기를 떨친 복수의 길, 그 어딘가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볼 수도 없는 나를 그림으로 웃게 하더니, 바람맞은 가지인 양 떨게 만든 그 여인.
    기억은 사라지고 악몽만이 남아 내 가슴을 아프게 하네.
    이별로 사랑을 증명하라시니, 업보인가 저주인가.
    잔인한 내 운명, 서럽고 또 서러워라.
    그러지 마시오. 떠날 수 있을 때…떠나시오.
    이것은 어명이자 제 운명입니다.
    휘회할 겁니다.
    후회하겠습니다. 어용을 완성해 마왕을 봉인할 수만 있다면요.
    내가 위험할까 봐 그렇소! 낭자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이율 (양명대군)
    내 묻겠다. 네 눈엔 내가 어찌 보이느냐?
    이 나라의 대군으로 보이십니다. ——홍천기
    네 눈엔 내가 어떤 사내로 보이느냔 말이다.
    솔직하게 말합니까? ——홍천기
    말 해라.
    빌어먹을 놈이요. ——홍천기
    신령함이 깃들지 않은 그 이유를 네 정녕 모르겠느냐?
    제발, 어용을 그리는 동안만이라도, 하 주부를 잊어다오. 그래야만 한다. 부탁이다.
    제12장 수사전 殊死戰
    홍천기
    만약 어쩔 수 없이 계약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대도, 미치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하람이를 구할 수만 있다면.
    하람
    무엇을 원하십니까?
    마왕을…내게 넘겨라. ——이후 (주향대군)
    넘기고 싶다고 넘길 수 있는 것이옵니까?
    너는 그저 수락하기만 하면 된다. ——이후 (주향대군)
    넘기지 않겠다면…어찌 되는 것입니까?
    이대로 모진 고초를 겪다가 봉인식을 하게 되겠지.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알고 있느냐? 토끼 사냥에 쓰인 개는 사냥이 끝나고 나면 죽임을 당하는 법이다. 봉인식이 끝나고 나면 관련된 자들은 모두가 죽거나 도망을 치게 되겠지. 아니 그런가, 일월성? 언제까지 나를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가? ——이후 (주향대군)
    더 이상 마왕은 상관없다. 어차피 난 복수의 길에 서 있다. 나와 아버지를 이용했던 왕실의 이기심은 여전하다.
    이젠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이율 (양명대군)
    너…두렵구나. 연유가 무엇이냐? 나는 너에게 그리라 말할 수 밖에 없지만, 부친처럼 광증에 걸릴 걸 알면서도 다시 돌아와 어용을 그리는 연유 말이다.
    선비님을…연모하니까요. 차라리 제가 그 돌감옥에 갇혀버리는 게 낫겠습니다. ——홍천기
    그렇게 좋으냐? 다신 갇히고 싶을 만큼.
    참으로 한심하고 미련하고 구제불능인 건 하주부나 너나 똑같구나. 미칠 수도 있다는데 봉인식 어용을 그리는 너나, 마왕에 잡아 먹힐 수도 있다는데도 봉인식을 거부하는 하주부나 똑같다.
    이게 다 무슨 꼴이냐.
    (마왕, 그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이리 위험한 일을 너에게 하라고 할 수밖에 없다니, 미안하다. 참으로 미안하다.
    형님, 대군으로서의 채통을 잊으신 것입니까?
    채통이라? 네가 치켜야 할 채통이 생기고 나니, 이 형님 따위는 반푼이처럼 보이는 것이냐? 감히, 아우인 네가 감히 내 자리를… ——이후 (주향대군)
    차라리 솔직히 말씀해 주시옵소서. 마왕, 그것을 탐내고 계신 것이 아니 옵니까? 그것은 형님을 집어삼키고 나아가 이 나라까지 먹어 버릴 것입니다.
    네가, 감히 날 가르치려 드느냐? 내가 매죽헌에서 했던 말 기억하느냐? 화살은 시위를 벗어났느니라. ——이후 (주향대군)
    왕 (성조)
    화공의 운명은 하늘에 달렸지. 신령한 화공의 아비도 저주를 피해 가지 못했으니까. 허나, 만백성을 위해서 마왕을 봉인할 그림을 그리는 것, 그것은 하늘이 내린 화공의 신령한 운명이다.
    허면 저희가 그 화공에게 너무 가혹한 일을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율 (양명대군)
    율아, 기억하느냐? 경원전에서 불이 났던 그날, 왜 다 타지 않고 남아있는 부분이 있는지 의아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알겠다. 살아남은 것은 그림의 의지였음을. 허니 신령한 화공의 운명도 그림이 정하지 않겠느냐.
    후는 총명하고 강건하나 어질지 못하다. 게다가 경원전에서 불이 난 이후부터 쭉 마왕을 쫓았다. 선왕께서 평생을 가두려 애써왔던 그 마왕을 말이다. 그런 후가 어좌에 앉으면 이나라와 왕실이 어찌 되겠느냐?
    율아, 이것은 너희들의 아비로서가 아닌, 이 나라 군주로서…너에게 내리는 어명이다.
    최원호
    우리에게 화차는 피하고 싶으면서도 죽기 전에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그런 존재지. 그와 계약해서 그림을 그리면 화공 인생 최고의 걸작이 나오지. 하지만 그 화공은 죽거나 미치게 된다. 그 그림을 그리면서 모든 기운을 빼앗기기 때문이야. 은오는 어쩌면 그렇게라도 어용을 완성하고 싶었던 걸 거다.
    그것이 신령한 화공이라는 이름에 붙여진 비밀이다.
    제13화 封印式 봉인식
    홍천기
    하람아, 언젠가 이야기했었지. 그림에게도 저마다의 의지가 있다고. 임자를 찾아가는 의지 말이다. 너를 위해서 꼭 보여줄게.
    선비님, 광증이 두렵진 않았던 게 아닙니다. 어쩌면, 이번이 선비님을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제 재능으로 선비님을 구할 수만 있다면, 살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어용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비님을 위해서 그렸습니다. 해서 저는 마왕이 어용에 봉인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람
    대군께서도 차차 알게 될 것이 옵니다. 진정 두려움이란 게 무엇인지. 그것이 인간을 얼마나 나약하고 병들게 만드는지를…
    생각은 이미 옥사에서 충분히 하였소. 이 결정이 낭자만을 위한 거라고는 생각지는 마시오.
    이율 (양명대군)
    나는 자네가 왜 일월성이 되었는지 모르나 자네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네. 자네가 이리 된 연유가 다 19년 전 석척 기우제 때문이 아닌가?
    그날 이후 눈이 멀어 버린 자네에게, 그날 마왕의 존재를 품어 버린 자네에게, 이 나라의 왕실과 내 아바마마, 그리고 선왕이셨던 내 할바마마를 대신해, 나는 사과를 하고 싶네.
    미안하네.
    사과라니요. 당치 않사옵니다.
    (그 세월을 모르시면서 이리 쉽게 사과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대군 나의리.) ——하람
    형님, 언젠가 저희가 아직 아이였을 때, 형님이 무서운 꿈을 꾸셨다고 할바마마께 눈물을 보이신 적이 있으시지요. 그때 할바마마께서 형님을 무릎에 앉히시고 하셨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후야, 꿈속에 있으면 그게 꿈인 줄 어찌 아느냐? 꿈이 꿈인 줄 알려면 깨어나야 한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이후 (주향대군)
    형님이 원하시는 그 모든 것이 차마 덧없고 비었고 헛됨이라 잘라 말할 순 없사오나 마왕을 얻고 평생을 괴로움과 고통 속에 헤매시다가 한 줌 흙이되어 돌아가신 할바마마를 잊지 마시옵소서.
    제14화 절처봉생 絕處逢生
    홍천기
    보이지 않던 세상에서 너는 내게 단 하나의 빛나던 별이었다.
    하람아, 내 운명을 걸고 너의 운명을 지켜줄게.
    돌아와 줘서 고맙다, 하람아.
    하람아, 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나는 마왕과 싸울 것이다.
    내가, 내가 그린 어용에 그 참혹한 마왕을 가둘 것이야.
    한 번도 말로 한 적 없지만, 너를…연모한다, 하람아.
    하람
    너는 내가 보았던 세상에…하나 뿐인 소중한 기억이었다.
    다시는 누구도 그대를 아프게 하지 못할 것이요.
    진심으로 연모하오, 낭자.
    낭자를 멀리함으로써 낭자를 지켜낼 수 있다면, 난 낭자를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이라도 밀어낼 것이요. 미안하오, 낭자.
    자넨 언제부터 입이 그리 가벼워졌더냐?
    나으린 언제부터 이리 분별력을 잃으신 겝니까? 우리의 원대한 숙원은 어쩌시고 한낱 연심으로 일을 그르치시려 하십니까? ——매향
    이보게, 매향. 우리의 숙원이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일인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루려는 숙원이 아니다.
    날 원망하시오. 얼마든지 원망하시오. 대신 난 절대로 보낼 수가 없소.
    차라리 원망이라도, 원마잉라도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원망이라도 해서 그들이 살았으면 좋겠다구요! 이제 백유화단 식구들까지 잘못되면 저는 저를 원망하고 평생 저를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가야 합니다. ——홍천기
    미안하오. 나도 그 마음을 압니다. 나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내게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소. 다시는 그 주구도 잃고 싶지 않소. 내 반드시 그들을 살려내리다. 약조하오.
    이율 (양명대군)
    나는 막지 않겠다. 형님은 절대로 마왕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허면, 방법은 하나…나도 대가를 치러야겠지.
    지난번엔 하주부가 목숨을 연명했기 때문에 나으리도 무사하실 수 있던 것이옵니다. 참사검을 사용해 누군가 죽는다면, 이번엔 진정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옵니다. ——월선 (성주청 국무)
    어쩌겠느냐? 그것이 내 운명이라면.
    무영
    나으리, 부디 무탈하십시오. 돌아간다는 약조는 아마도 지키지 못할 것이옵니다. 끝까지 뫼시지 못해 송구하옵니다.
    그동안 거둬주신 은혜는 제 목숨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부디 남은 생은…행복하십시오, 나으리.
    제15화 추보 推步
    홍천기
    하람아, 혼자서만 고통을 짊어지지 마라. 나도 내 자리에서 방도를 찾을 것이야.
    마왕을 봉인할 그림 꼭 다시 그려 낼게.
    하람
    이제부터 내가 위험할 때마다 이렇게 내 손을 잡아주시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난 낭자의 곁을 지키리다.
    낭자, 그간의 삶이 참으로 허무합니다. 복수를 위해 달려왔거만, 아버지의 죽음이 결국 내가 기억을 잃은 동안 저지른 일이었다니… 그것이 내가 아니라 내 안에 마왕이었다 해도 난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소.
    이제야 마음을 내려놓고 온전히 살아보려 하는데, 제 안의 이것을 대체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율 (양명대군)
    형님, 십수 년 전 석척 기우제가 열렸던 날, 제가 그날 경원전에 모시고 가지 않았더라면, 형님이 조금은 편히 지내고 계셨을지 모릅니다. 이제 그 죄는 제가 짊어지고 갈 테니, 아바마마께 사죄드리십시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무슨 사죄를 하란 말이냐! ——이후 (주향대군)
    마왕을 노리고 어좌를 탐하다가 봉인식을 망치고 여러 사람을 해하려 하시지 않았습니까?
    네 놈이 지금 그런 말을 지껄이는 것을 보니 이제 한숨 돌린 모양이구나. 위선 떨지 마라. 너도 그만 야욕을 드러내거라. ——이후 (주향대군)
    이후 (주향대군)
    네 애비가 죽은 건 도망친 네 탓이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다 죽는다면 그것 또한 네 탓이겠지. 내 명을 어기면 어찌 되는지 똑똑히 보거라.
    이제 소자는 마왕을 내림 받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옵니다. 이렇게 아바마마께서 알게 되었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요. 선왕의 유언과 이 나라의 백성들, 저보다도 더 은애하시는 군왕이시니까요.
    무엇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물으셨습니까? 그것은…아바마마이십니다.
    왕 (성조)
    넌 평생 그렇게 오해를 했지. 과인도 어린 너에게 차마 얘기를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아무리 진실이라도 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악연으로 이리 됐지만 과인은 너희 가문에 평생 참회를 할 것이다. 그리고 과인의 숨이 붙어있는 한, 마왕과 싸워 다시는 그런 참혹한 일을 만들지 않으리라. 약조하마.
    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든 것이냐? 세자냐? 왕이 되겠다는 생각이 너를 이렇게 만든 것이냐?
    대답하라! 죽기를 각오하고 그 일을 벌였을 터. 짐이 사경을 헤매는 동안 너는 어명을 어겼다. 아비로서도, 이 나라 군왕으로서도 너를 용서할 수 없으니 너에게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릴 거다.
    제16화 붉은 하늘의 연인
    홍천기
    올 거야. 선비님은 반드시 와. 오늘 마왕을 봉인하지 못하면 선비님은 마왕의 일부가 된다. 선비님도 내 마음을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올거야. 꼭 온다고.
    어떻게든, 어떻게든 완성시켜야 합니다. 대군 나으리, 붓을 좀 쥐어주십시오. 어서요!
    이제 처음 만났을 때처럼 제가 앞이 보이지 않이니 이를 어쩝니까? 책임지십시오.
    내 평생 책임지리다. ——하람
    선비님, 우십니까? 괜찮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것일 뿐입니다. 원래 있던 자리로요.
    하람
    일이 바쁘신 걸 보니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합니다.
    이걸 어찌 잘 지냈다고 생각하는가? 자네가 돌아와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네만.
    봉인식이 끝나고 저희가 몰래 떠났던 날 밤도 이렇게 웃으면서 보내 주셨습니다. 저하는 진정으로 어진 성군이 되실 것이옵니다.
    늦어서 미안하오.
    그때의 복숭아는 아니지만 약조를 꼭 지키고 싶었소.
    이율 (양명대군)
    누가 네 생일이라 온 것이냐, 하주부 생일이라 온 것이지.
    아니 뭐 그게 그거 아닙니까? ——홍천기
    그래, 그게 그거다. 두사람은 같은 날 태어났으니.
    행복하거라. 내 그거면 된다.
    형님, 옛말에 이르기를 형제는 수족 같다 했습니다. 헌데 수족이 갈라지면 어찌 다시 이을 수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말거라. 지금은 너와 내가 피를 나눈 형제이긴 하나, 내가 어좌에 앉는 순간부터 주군과 신하의 관계가 될 터이니. 아우야, 그 자리는 원래 내 것이었다. ——이후 (주향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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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 RYEONG제이시즌, 구자완
  • DO WHA JI제이시즌, 마마고릴라(Mama Gorilla)
  • CHEON GI HEART제이시즌, 조병현
  • SHINING LOVE제이시즌, 안수완
  • LOVERS OF THE RED SKY ENDING TITLE제이시즌, 김현준
앞 내용 출처[2]

참고 문헌

홍천기 – 프로그램 정보
SBS[2022년12월18일 접속]
홍천기 OST
Bugs![2022년12월18일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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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ody
요리하기, 베이킹하기, 종이접기, 음악 듣기, 그리고 드라마를 보면서 명대사 정리하기를 즐거워요.